[지식]사는 곳이 사라지고, 먹는 곳만 남을 때 🍴

2025-08-20

지식│마음은 콩밭

ep.111 푸디피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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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디피케이션(foodification)

관광객이 몰리는 동네에서 흔히 일어나는 변화예요. 카페, 식당, 디저트 가게 같은 F&B는 빠르게 늘어나고, 문구점·세탁소·서점·철물점 같은 생활형 가게들은 하나둘 사라지죠. 관광화(투어리피케이션,Tourification)의 한 갈래지만, 핵심은 동네 상권이 ‘먹는 경험’ 중심으로 단순화된다는 점이에요.

이는 일상이 약해진다는 의미인데요, 장을 보고, 옷을 수선하고, 병원이나 은행을 찾는 기본 인프라가 점점 줄어들죠. 골목 풍경도 달라져요. 어느 순간 간판은 비슷하고, 인테리어도 어디서 본 듯하고, 결국 “여기가 어디더라?” 싶은 익숙한 카페 거리로 변해버려요. 최근, 스페인 세비야를 대상으로 한 연구*는 이 현상을 숫자로 보여줬어요. 결론은 간단합니다. “F&B의 압도적 지배, 생활형 업종의 다양성 감소”. 15년 동안 도심은 점점 ‘사는 곳’이 아니라 ‘먹는 곳’으로 기울어가고 있대요.

*Ruiz Romera et al., “Making the City Uninhabitable. The Impacts of Touristification on the Commercial Environment,” Cities (2025)


매력적인 레스토랑이 가득한 유럽의 거리 ⓒOpenAI GPT(DALL·E)


🔍 숫자로 보는 변화, 세비야 15년 추적

연구자들은 세비야 역사도심의 563개 점포를 2008년, 2019년, 2023년, 세 시점에 걸쳐 추적했어요. 과거는 구글 거리뷰로, 현재는 직접 현장을 촬영하여 가게 외관을 산업 분류로 나눠 기록했죠. 복잡한 통계 대신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흐름을 잡아냈어요. 


1️⃣ 두 집 중 한 집은 업종이 바뀐다
15년 동안 세 가게 중 두 곳(66%)이 업종을 바꿨어요. 그중 절반 이상(52.2%)은 업종 자체를 갈아엎은 ‘대폭 전환’, 13.8%는 같은 업종 안에서 메뉴나 형태만 바꾼 ‘소폭 전환’이었어요. 변하지 않은 곳은 24%, 외관만 달라진 곳은 9.3%. 특히 2019~2023년, 4년 사이에도 무려 36.8%가 바뀌어, 최근일수록 변화 속도가 더 가파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2️⃣ 늘어난 건 F&B, 줄어든 건 생활 가게
가장 뚜렷한 변화는 단연 F&B. 76곳 → 158곳으로 두 배 이상(+108%) 늘며 업종 1위를 차지했고, 숙박업도 6곳 → 21곳으로 증가했어요. 반면 생활·가정용품점은 83곳 → 43곳으로 반토막, 서점·문구·은행·세탁 같은 기타 생활업종 비중은 24% → 14%로 크게 감소했어요. 의류·신발도 115곳에서 86곳으로 줄어 상업의 다양성 자체가 확 줄어든 모습이에요. 


3️⃣ 거리의 풍경, “어디서 본 듯한” 카페 거리
간판은 흑백 대비, 영어 상호와 영문 표기가 흔해지고, 미니멀 인테리어가 유행처럼 번졌어요. 글로벌 프랜차이즈(Taco Bell, 100 Montaditos 등)와 세계 각국 음식점이 들어서면서 ‘어디서 본 듯한’ 국제화된 거리 풍경이 완성됐죠. 한편 전통 타파스* 바가 가스트로 바**로, 레스토랑이 아이스크림 가게로 바뀌는 등 F&B 안에서의 미묘한 변신도 흔히 관찰됐어요.

*술안주·애피타이저, 스페인의 한 입 요리 문화
**고급 요리와 함께 다양한 주류를 즐길 수 있는 현대적인 바


4️⃣ 입지 효과, 관광 구간일수록 더 가속화
관광객이 몰리는 핵심 거리일수록 변화는 압도적이었어요. F&B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은 구간도 있었고 많게는 2~5배까지 늘어난 사례도 있었죠. 반대로, 중심에서 벗어난 골목들은 여전히 주민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업종이 버티며 ‘완충지대’ 역할을 해왔어요.


👀 F=ma, 힘이 커질수록 속도는 빨라진다

왜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걸까요? F&B로 넘쳐나는 거리,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죠. 지역의 유명한 거리들, 전국의 ‘~리단길’도 비슷해요. 사람이 몰리는 공간이 순식간에 바뀌는 이유, 세 가지 힘이 커졌기 때문이에요.


💪 평점·지도 플랫폼, 한 점으로 빨아들이기 
요즘 맛집은 지도 앱과 별점에서 시작돼요. 검색 상단에 뜨고 사진이 예쁘면,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립니다. 온라인 쏠림(추천) → 오프라인 줄 서기(방문) →주변 유사 업종 확산(모방). 이 3단 루프가 돌기 시작하면 동네는 금세 ‘먹는 거리’로 기울어요. 별점이 1점만 올라가도 매출이 5~9% 뛴다는 말,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평점 4.6점, 리뷰가 무려 7,200개인 세비야 타파스 맛집 ⓒ구글지도


💪 짧게 머무는 여행자의 빠른 선택
도시 여행자는 오래 고민하지 않아요. 지금 당장 즐길 수 있는 걸 고르는데, 가장 쉽고 확실한 선택지가 식당과 카페죠. 세비야 연구 구간은 명소, 숙소가 빽빽한 거리였는데, 이곳에서 F&B는 15년 사이 최대 5배까지 늘었어요. 짧게 머무는 여행자의 같은 선택이 반복되면서, 생활형 가게의 자리가 점점 줄어든 거예요.


💪 보행자 중심 거리, 더 많은 F&B 
차가 줄고 보행자 중심으로 바뀐 거리는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요. 자연스레 저녁·밤 외식 수요도 커지고 거리에 활기가 붙죠. 세비야에서도 보행 전용 거리일수록 바·레스토랑이 테라스를 확장하며 거리를 장악하는 모습이 뚜렷했어요. 걷기 좋음 → 오래 머묾 → 더 자주 먹음. 이 사슬은 관광에는 분명 긍정적이에요. 여행자는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소비하니까요. 하지만 소음과 보도 점유 같은 문제로 주민 생활에는 불편을 주죠. 결국, 관광 활성화를 위한 도시 개선이, 아이러니하게도 F&B 확산을 가속하는 또 다른 힘으로 작용하는 거예요. 그래서 공간(보도폭·좌석 배치), 시간(야간 운영), 행태(테라스 규칙) 같은 관리가 함께 필요하답니다.


🌐 푸디피케이션에 대응하는 세계

  • 바르셀로나(스페인)ㅣ구시가지는 기념품·휴대폰 액세서리·네일숍 같은 관광상점 신규 진입을 제한했어요. 대신 주민이 필요로 하는 일상·문화형 업종을 늘리는 방향을 잡았죠. 현장 단속도 강해요. 2025년 여름, 민원이 잦던 테라스 업소 점검했는데, 다수의 위반이 적발됐고 심지어 면허조차 없는 곳도 있었어요.
  • 암스테르담(네덜란드)ㅣ일부 도심 구역에서는 2017년부터 관광객 전용 상점(티켓숍, 치즈·기념품, 자전거 렌털 등)의 신규 개점이 금지됐어요. 2020년엔 네덜란드 행정법원이 이를 합헌으로 판결하며 제도적 뒷받침까지 갖추게 됐죠. 한마디로, 새로운 관광상점의 문턱을 애초에 좁혀 상업 다양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입점 단계에서 미리 예방하는 방식이에요.
  • 베네치아(이탈리아)ㅣ2017년, 시는 케밥·피자 슬라이스 등 테이크아웃 위주 패스트푸드의 신규 개점 금지를 결정했습니다. 예외는 장인이 운영하는 젤라토 정도였어요. 목적은 도시의 품격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였죠. 즉석 먹거리가 빠르게 퍼지며 거리를 단순화한다고 본 것이죠
  • 서울 북촌(대한민국)ㅣ북촌 한옥마을은 2025년 3월부터 주민 생활권 보호를 위해 관광객 출입 제한(레드존) 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어요. 오후 5시부터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들어갈 수 없고, 위반 시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돼요. 또 2026년 전세버스 통행 제한도 앞두고 있죠. 규제의 방식은 단순히 사람 수를 막는 게 아니라, 시간·교통수단 같은 이용 행태를 조절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요.


🍲 한 끼는 즐겁게, 동네는 오래가게

푸디피케이션은 단순한 맛집 붐이 아니에요. 동네의 구조 자체를 크게 흔드는 흐름이죠. 세비야의 15년 기록처럼 음식점과 카페가 늘면, 문구·세탁·철물·서점 같은 생활 가게는 줄고, 골목은 점점 비슷해져요. 여기에 걷기 좋은 거리, 관광 동선 집중까지 겹치면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지고요.

물론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에요. 새로운 맛집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지역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기도 하죠. 하지만 균형을 잃으면 문제예요. 즐기는 곳만 남고 사는 곳이 사라지면, 동네의 힘도 함께 약해지니까요.

균형을 지키려면 업종 다양성이 먼저예요. 구역별로 F&B가 과도하게 몰리지 않도록 계획을 세우고, 서점·문구·수선집 같은 생활형 가게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있어요. 노상 테라스나 야간 운영도 보도 폭, 좌석 수, 운영 시간 같은 눈에 보이는 기준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고요. 단기숙박 역시 허가 총량이나 구역 제한 같은 질서를 세워야 주거 기능이 유지될 거예요.

결국 중요한 건, 한 끼의 추억이 동네의 삶과 오래 함께 가는 것. 골목을 걸을 때 한번 둘러보세요. “이 거리에는 먹는 곳 말고 무엇이 남아 있지?” 아이가 찾을 문구점, 급할 때 맡길 수선집, 평소 들를 서점… 그런 가게들이 여전히 있다면,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의 얼굴도 오래 버틸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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