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마음은 콩밭

ep.105 지역화폐

‘지역화폐’는 동네 경제를 살리는 작은 엔진이 되고 있어요. 최근, 정책 변화로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지역화폐! 흥미로운 역사와 전 세계에서 진행된 다양한 실험, 그리고 그 안에 담긴 고민을 함께 들여다보아요.

🔍 지역화폐, 누가 먼저 시도했을까?

전국 곳곳에서 들려오는 ‘지역화폐’ 이야기. 그 시작*은 의외로 먼 곳, 캐나다의 작은 도시 코목스 밸리(Comox Vally)에서 시작됐어요.

*역사적으로 다양한 지역화폐 사례가 전해지지만, 코목스 밸리의 LETS가 컴퓨터로 거래가 기록·관리된 최초의 현대적 지역화폐라 할 수 있어요.

1983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코목스 밸리는 목재업 침체와 미군 기지 이전 등으로 실업률이 치솟으며 지역 경제가 꽁꽁 얼어붙었어요. 돈은 외부로 빠져나가는데, 마을 안에는 돌릴 돈이 없다 보니 모두가 막막했죠. 이때 컴퓨터 프로그래머였던 마이클 린튼(Michael Linton)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돈이 없어도 이웃끼리 물품과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탄생한, 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LETS는 ‘🟢그린 달러(Green Dollar)’라는 가상의 화폐 단위를 만들어 동네 주민들이 현금 없이도 노동력, 물품, 재능을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게 했어요. 예를 들어, A씨가 이웃의 집수리를 해주면 그만큼의 ‘🟢그린 달러’를 적립받아 다른 주민에게서 식료품을 사거나 아이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죠. 이 시스템은 단순한 물물교환이 아니라, 회원제로 운영되며 거래 내역이 컴퓨터에 기록돼 누구나 확인할 수 있었어요. 투명한 관리와 주민들 간의 신뢰가 핵심. 현금이 없어도 ‘서로의 시간과 재능’을 돈처럼 쓸 수 있다는 생각, 참 기발하지 않나요?

LETS는 불과 2년 만에 50만 🟢그린 달러(약 5억 원 상당)의 거래가 이루어졌어요. 말 그대로 대성공! 이후 이 모델은 캐나다 전역을 넘어 영국, 호주, 일본 등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1990년대 영국에만 350개 이상의 LETS가 생겨났대요. LETS는 지역화폐 운동의 대표 모델로 자리 잡아 지역상품권, 시간은행, 디지털 지역화폐 등 다양한 실험에 큰 영향을 미쳤죠.

1983년 지역화폐 LETS를 만든 마이클 린튼 ⓒComox Valley Record

하지만, LETS는 영원하지 않았어요. 마이클 린튼이 코목스 밸리를 떠난 뒤, 주민들 간의 참여와 신뢰가 조금씩 줄면서 거래량도 감소했고, 결국 LETS는 사라졌답니다. 이후 ‘커뮤니티 웨이 달러(Community Way Dollars)’ 같은 새로운 지역화폐 실험을 이어졌지만, 코목스 밸리에서는 LETS가 예전처럼 자리잡지 못했어요. LETS의 한계는 바로 ‘사람🙋’이었죠. 자발적 참여와 신뢰, 거래 네트워크가 유지되지 않으면 지역화폐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남겼답니다. 그럼에도 LETS는 지역화폐 운동의 상징적 출발점으로 여전히 회자되고 있어요. LETS의 철학과 구조는 이후 상품권형 지역화폐, 디지털 통화, 상호교환 플랫폼 등으로 이어졌어요.

💸 공공이 만든 지역화폐 실험

공공이 직접 운영한 지역화폐 사례로는, 영국 브리스톨 시에서 2012년부터 시작된 ‘브리스톨 파운드(Bristol Pound)’가 널리 알려져 있어요.

브리스톨은 전통적으로 골목상권이 활발했지만, 어느새 대형 유통체인들이 지역을 잠식했어요. “우리 동네 돈을 우리 동네에서 돌릴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이 시작했죠. 시민사회와 시청이 머리를 맞댄 결과, 2012년 9월 💙브리스톨 파운드가 등장했어요. 💙브리스톨 파운드는 지역 내 소상공인과 독립 상점에서만 사용하도록 설계해 지역 돈이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했어요. 덕분에 골목상권의 매출이 늘고, 지역경제가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죠. 실제로 800여 개 상점과 2,000명 이상의 시민이 참여하며 ‘로컬 머니 효과’를 톡톡히 봤답니다.

게다가 💙브리스톨 파운드는 지폐를 뛰어넘어, 모바일 결제와 온라인 송금까지 지원하며 젊은 세대의 참여를 유도했죠. 시청은 지방세와 공공요금까지 지역화폐로 받으며 행정과 지역경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시민참여형’ 모델을 만들어냈어요. 시장과 일부 공무원은 급여의 일부를 💙브리스톨 파운드로 받기도 했대요. 공공과 민간이 함께 실험한 ‘로컬 머니 실험실’ 같지 않나요?

브리스톨 파운드 ⓒBristol Pound Legacy

아쉽게도 이 실험도 영원하지 않았어요. 2020년대 들어 카드·모바일페이 같은 디지털 결제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브리스톨 파운드의 경쟁력이 약해졌거든요. 코로나19로 현금 사용이 줄어든 데다, 운영비 부담과 참여 업체 감소까지 겹치면서 2020년 8월, 디지털 결제가 종료됐고, 2021년 9월엔 종이 화폐까지 공식적으로 유통이 중단되었죠.

그럼에도 💙브리스톨 파운드는 ‘공공주도형 지역화폐’로서 남다른 의미를 남겼어요. 시청이 세금과 공공요금 결제에 지역화폐를 도입하며 화폐 신뢰도를 높였고, 시민과 사회적경제 조직이 함께 운영하며 지역 자본 순환을 실험했으니까요. 지역 식자재 소비, 에너지 절약, 사회적기업 참여까지, 지역화폐의 잠재력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였죠.

물론 🙋시민 참여와 📲디지털 혁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역화폐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교훈도 함께 남겼어요. 💙브리스톨 파운드의 퇴장은 ‘디지털화’, ‘참여 유도’, ‘운영 효율성’이 지역화폐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어요.

🔍 우리나라 지역화폐는 어때?

한국 지역화폐의 시작은 1996년 강원도 화천군이 ‘내고장 상품권’을 발행하며 지역경제와 자영업자 지원을 위해 시도한 정책형 화폐에서 출발했어요. IMF 외환위기 이전부터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작은 실험이었지만, 지역경제 순환에 새로운 길을 열어줬죠.

이후에는 경제공동체를 지키려는 움직임도 이어졌어요. 대전의 ‘한밭레츠(LETS)’는 이웃 간 재능과 노동력을 교환하는 품앗이형 지역화폐로, 서울의 ‘은평 e-품앗이’ 등 전국으로 확산됐어요. 돈 대신 신뢰와 재능이 오가던 작은 경제실험이었답니다. 앞서 언급한 최초의 지역화폐, 캐나다 LETS에서 영감을 받은 지역화폐죠.

2000년대 중반부터는 지자체가 주도하는 정책형 지역화폐가 본격화됐어요. 성남시의 ‘성남사랑상품권’은 청년배당과 연계해 주목받았고, 2019년엔 전국 177개 지자체로 확산될 만큼 ‘우리 동네 돈’이 자리 잡았답니다. 그중, 화천군은 산천어축제에서 참가자에게 체험료 일부를 상품권으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매년 5억 원 이상을 지역 상권에 환류시키기도 했어요. (역시, 우리나라 최초 지역화폐 지역은 다르네요!)

2020년, 전국민은 지역화폐를 알게 되었죠.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에 대응해 정부와 지자체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했어요. 4인 가구당 최대 100만 원이 신용카드, 전자화폐, 그리고 각 지자체의 지역화폐로 지급되어, 전통시장, 골목상권, 동네가게에서 소비가 집중되도록 설계됐어요. 특히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전 도민에게 1인당 10만 원씩 지역화폐로 지급해 전국적 관심을 모았답니다.

KAIST 연구에 따르면,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후 5주간 소상공인 매출이 4.5% 증가했고, 전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매출 회복세가 뚜렷했다고 해요. 행정안전부 자료에서도 지역화폐 환전비율이 94.7%에 달해, 지역경제 선순환 효과가 확인됐고요. 단순한 현금지원이 아니라, 외부로 유출되던 돈을 지역 안에서 돌게 하여 소상공인 매출 증대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어요.

최근 정부가 2차 추경 편성과 함께, 25만 원의 지원금을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우리 동네 돈’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경제점검TF를 가동한 가운데, 지역화폐가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과 골목상권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답니다. 과연, 지역화폐는 다시 한번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