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마음은 콩밭
ep.102 교황

1984년 5월 3일, 김포공항 활주로에 한 사람이 천천히 내려옵니다. 그리고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활주로 바닥에 입을 맞춰요. TV로 생중계를 보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멈췄고, 누군가는 속삭였죠. “저 사람, 누구야…?” 요한 바오로 2세, 로마에서 온 교황이었어요. 그 순간, 가톨릭 교회의 역사의 한 장면이 시작됐고, 어쩌면 한 외국인의 진심 어린 '로컬 탐방기’도 시작된 셈이었죠.

김포공항에 도착한 교황 ⓒcpbc 가톨릭평화신문 / 소록도를 방문한 교황 ⓒ연합뉴스
1️⃣ 첫 번째 방문, 내 마음은 한국에♡
교황은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1980년대 당시만 해도 교황의 해외 방문은 드문 일이었고, 그중에서도 아시아, 그것도 한국을 찾는 건 이례적이었죠. 그는 왜, 그렇게 먼 곳까지 왔을까요? 심지어 ‘시성식*은 바티칸에서만 한다’는 전통을 뒤집고까지 말이에요. 답은 단순했어요. “한국은 순교자의 땅이고, 기적의 땅이며, 오래도록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로마를 떠나기 전 그가 발표한 담화문의 제목도 그랬어요.「내 마음은 한국에」 (っ⸝⸝・-・)⊃♡ 실제로 그는 40여 차례나 한국어를 배우고, 17번이나 한국어 미사를 연습했다고 하니, 그 진심이 느껴지죠.
*‘시성식’은 가톨릭 교회가 한 인물의 순교나 영웅적 덕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복자’로 선포하는 예식이에요. 복자는 지역 교회에서 공경받을 수 있죠. ‘시성식’은 이미 복자로 선포된 인물을 교황이 ‘성인’으로 공식 선언하는 예식으로,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그 인물을 공경할 수 있게 인정하는 의식이에요.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니겠는가”
- 1984.5.3. 김포공항 환영식에서 울려 퍼진 교황의 우리말 인사 (논어의 한 구절을 인용)
서울 여의도광장에는 무려 60만 명이 모였고, 순교자 시성식이 열렸어요.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의 로컬’을 찾아다녔어요. 서울뿐만 아니라 광주, 대구, 부산, 그리고 소록도까지요.
- 광주에서는 본래 목적지인 광주무등경기장으로 이동하지 않고, 5·18의 상처가 남은 전남도청과 금남로를 들러, 묵념했어요.
- 부산과 대구에서는 노동자 및 농어민을 위한 특별 미사를 진행했어요.
- 한국에서 가장 소외된 곳을 가고 싶다는 교황의 요청으로 가게된 소록도에선 정부의 만류에도 한센병 환자의 손을 잡았죠.
당시 방문은 교황청이 시성식을 바티칸 밖에서 치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한국 교회의 자립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해주기 위한 발걸음으로도 기록되었어요.

1989년 세계성체대회가 열린 여의도 광장 ⓒ국가기록원
2️⃣ 두 번째 방문, “분단의 벽이 무너지길 바랍니다”
5년 뒤, 1989년 교황은 다시 한국을 찾았어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참석을 위해서였죠. 당시 여의도 광장에는 65만명 모였대요. (ↀДↀ)✧ 그는 잠실운동장에서 “분단의 벽이 무너지길” 기도했고, 명동대성당에서는 “정신의 힘이 분열을 치유한다”는 말을 남겼어요. 당시 한국은 막 서울 올림픽을 치러내며 국제적 주목을 받던 시기였는데, 교황은 그 흐름 위에 ‘신앙’이라는 언어로 평화와 화해의 메세지를 덧붙였어요.
- 잠실운동장에서의 개막 미사에서 남북 화해를 기원했어요.
- 청와대에선 북한의 종교 자유 부재를 비판하고 인도적 지원을 강조했어요.
- 명동대성당에서는 신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다시 한번 평화 메시지 전달했어요.
그는 늘, 말보다는 발걸음으로 의지를 보여줬어요. 그것도, 우리나라 한가운데서요.

솔뫼성지의 김대건 신부 생가에서의 교황 ⓒ국제문화홍보정책실
3️⃣ 세 번째 방문, “가난한 자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청년대회’ 참석과 ‘순교자 시복식’을 위해 방한했어요.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로 전국이 울음에 잠겨 있던 그해 여름이었죠. 교황은 ‘누구의 곁에 설 것인가’를 보여주려는 듯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강조한 행보를 보여주었어요.
📍서울
- 광화문광장에서 100만 명 이상이 참석한 미사를 집전하며, “가난한 자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호소했어요.
- 서소문 순교성지 참배 시 “박해받는 이들의 용기가 현대 사회의 양심이 되라”고 촉구했어요.
- 명동대성당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의 만남을 진행하며 국제적 관심 유도했어요.
📍충청도
- 당진 솔뫼성지에서 아시아 청년들과의 대화를 통해 “북한 주민과의 언어적 유대감이 평화의 초석”이라 강조했어요.
- 음성 꽃동네에서 장애인 시설 방문 시 오픈카를 타고 이동하며 “소외된 이들과의 동행”을 실천했어요.
- 서산 해미읍성에서 아시아 주교단과의 만남을 통해 북한 인권 문제 논의했어요.
교황의 세월호 유가족 위로(차량에서 내려 직접 편지 수령)와 위안부 할머니와의 면담은 종교적 지도자의 사회적 역할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
교황 앉은 KTX 자리?! 본래, 교황은 헬리콥터를 통해 대전으로 이동하기로 되어있었는데요. 당시 갑작스런 강풍과 비로 인하여 KTX를 타게 되었어요. 이때가 교황의 생애 최초 고속철도 경험! ใ(^▽^ )ว 교황은 특별열차가 아닌 일반 KTX의 특실 2칸을 사용하였고, 경호원의 만류에도 승무원들의 사인 요청을 모두 흔쾌히 받았대요. 한편, 코레일은 교황이 앉았던 KTX 좌석의 한 해 판매수익금 1,500만원을 기부했어요.
교황이 묵는 숙소?! 교황은 외국에 방문할때 어디에 묵을까요? 유명 호텔에서 머무는 외국 정상들과 달리, 교황은 방문국 주재 교황대사관에서 머물러요. 이때 교황청은 바티칸이 아닌, 방문국의 교황대사관이 된대요. 한국에는 서울 종로구에 주한 교황대사관이 있어요. 평소에는 주한 대사(대주교)가 사용하는 침대와 옷장을 그대로, 교황이 사용한대요. 1984년, 1989년, 2014년 모든 방문에서 교황은 검소하게 머물다 갔죠. 그나저나, 그때 교황청 주한 대사님은 어디서 주무시죠?! ◟( ・o˙ )◞

주한 교황대사관 ⓒ연합뉴스

네 번째 교황의 방문은 언제일까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열릴 예정이에요. 지난 202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행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음 개최지로, 서울을 발표했어요. 새로운 교황 레오 14세가 한국에 방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또 어떤 ‘지역’을 찾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요? 💭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는 전 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교황과 함께 신앙을 나누고 교류하는 국제 행사예요.

지식│마음은 콩밭
ep.102 교황
1984년 5월 3일, 김포공항 활주로에 한 사람이 천천히 내려옵니다. 그리고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활주로 바닥에 입을 맞춰요. TV로 생중계를 보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멈췄고, 누군가는 속삭였죠. “저 사람, 누구야…?” 요한 바오로 2세, 로마에서 온 교황이었어요. 그 순간, 가톨릭 교회의 역사의 한 장면이 시작됐고, 어쩌면 한 외국인의 진심 어린 '로컬 탐방기’도 시작된 셈이었죠.
김포공항에 도착한 교황 ⓒcpbc 가톨릭평화신문 / 소록도를 방문한 교황 ⓒ연합뉴스
1️⃣ 첫 번째 방문, 내 마음은 한국에♡
교황은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1980년대 당시만 해도 교황의 해외 방문은 드문 일이었고, 그중에서도 아시아, 그것도 한국을 찾는 건 이례적이었죠. 그는 왜, 그렇게 먼 곳까지 왔을까요? 심지어 ‘시성식*은 바티칸에서만 한다’는 전통을 뒤집고까지 말이에요. 답은 단순했어요. “한국은 순교자의 땅이고, 기적의 땅이며, 오래도록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로마를 떠나기 전 그가 발표한 담화문의 제목도 그랬어요.「내 마음은 한국에」 (っ⸝⸝・-・)⊃♡ 실제로 그는 40여 차례나 한국어를 배우고, 17번이나 한국어 미사를 연습했다고 하니, 그 진심이 느껴지죠.
*‘시성식’은 가톨릭 교회가 한 인물의 순교나 영웅적 덕행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복자’로 선포하는 예식이에요. 복자는 지역 교회에서 공경받을 수 있죠. ‘시성식’은 이미 복자로 선포된 인물을 교황이 ‘성인’으로 공식 선언하는 예식으로, 전 세계 가톨릭 교회가 그 인물을 공경할 수 있게 인정하는 의식이에요.
서울 여의도광장에는 무려 60만 명이 모였고, 순교자 시성식이 열렸어요. 그는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현장의 로컬’을 찾아다녔어요. 서울뿐만 아니라 광주, 대구, 부산, 그리고 소록도까지요.
당시 방문은 교황청이 시성식을 바티칸 밖에서 치른 최초의 사례로 기록되었으며, 한국 교회의 자립성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어요. 또한 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해주기 위한 발걸음으로도 기록되었어요.
1989년 세계성체대회가 열린 여의도 광장 ⓒ국가기록원
2️⃣ 두 번째 방문, “분단의 벽이 무너지길 바랍니다”
5년 뒤, 1989년 교황은 다시 한국을 찾았어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 참석을 위해서였죠. 당시 여의도 광장에는 65만명 모였대요. (ↀДↀ)✧ 그는 잠실운동장에서 “분단의 벽이 무너지길” 기도했고, 명동대성당에서는 “정신의 힘이 분열을 치유한다”는 말을 남겼어요. 당시 한국은 막 서울 올림픽을 치러내며 국제적 주목을 받던 시기였는데, 교황은 그 흐름 위에 ‘신앙’이라는 언어로 평화와 화해의 메세지를 덧붙였어요.
그는 늘, 말보다는 발걸음으로 의지를 보여줬어요. 그것도, 우리나라 한가운데서요.
솔뫼성지의 김대건 신부 생가에서의 교황 ⓒ국제문화홍보정책실
3️⃣ 세 번째 방문, “가난한 자의 울음소리에 귀 기울이십시오”
2014년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시아청년대회’ 참석과 ‘순교자 시복식’을 위해 방한했어요. 우리나라는 세월호 참사로 전국이 울음에 잠겨 있던 그해 여름이었죠. 교황은 ‘누구의 곁에 설 것인가’를 보여주려는 듯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를 강조한 행보를 보여주었어요.
📍서울
📍충청도
교황의 세월호 유가족 위로(차량에서 내려 직접 편지 수령)와 위안부 할머니와의 면담은 종교적 지도자의 사회적 역할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
교황 앉은 KTX 자리?! 본래, 교황은 헬리콥터를 통해 대전으로 이동하기로 되어있었는데요. 당시 갑작스런 강풍과 비로 인하여 KTX를 타게 되었어요. 이때가 교황의 생애 최초 고속철도 경험! ใ(^▽^ )ว 교황은 특별열차가 아닌 일반 KTX의 특실 2칸을 사용하였고, 경호원의 만류에도 승무원들의 사인 요청을 모두 흔쾌히 받았대요. 한편, 코레일은 교황이 앉았던 KTX 좌석의 한 해 판매수익금 1,500만원을 기부했어요.
교황이 묵는 숙소?! 교황은 외국에 방문할때 어디에 묵을까요? 유명 호텔에서 머무는 외국 정상들과 달리, 교황은 방문국 주재 교황대사관에서 머물러요. 이때 교황청은 바티칸이 아닌, 방문국의 교황대사관이 된대요. 한국에는 서울 종로구에 주한 교황대사관이 있어요. 평소에는 주한 대사(대주교)가 사용하는 침대와 옷장을 그대로, 교황이 사용한대요. 1984년, 1989년, 2014년 모든 방문에서 교황은 검소하게 머물다 갔죠. 그나저나, 그때 교황청 주한 대사님은 어디서 주무시죠?! ◟( ・o˙ )◞
주한 교황대사관 ⓒ연합뉴스
네 번째 교황의 방문은 언제일까요?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가 열릴 예정이에요. 지난 202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행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음 개최지로, 서울을 발표했어요. 새로운 교황 레오 14세가 한국에 방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그는 또 어떤 ‘지역’을 찾고,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까요? 💭
*서울 세계청년대회(WYD)는 전 세계 가톨릭 청년들이 교황과 함께 신앙을 나누고 교류하는 국제 행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