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남풍을 타고 추억을 보내드려요.

2025-01-24

남해│양희수(마파람 사진관)

인터뷰 ep.65



SNS의 무한 스크롤을 멈추게 만든 사진을 발견했어요. 익숙한 마을 풍경 속에서 수줍게 미소 짓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단숨에 눈길을 사로잡더라고요. 이 사진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졌죠. 어르신들의 특별한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을 선물해 드리는 프로젝트가 있다니, 그렇게 보물섬 남해로 갔어요.

알고 보니, 남해는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이 가장 많은 연령층을 이루고 있는 지역이래요. 사람들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네모난 카메라 프레임에 담아내는 희수 님을 마파람 사진관에서 만났어요.


따뜻한 남풍이 부는 사진관


사진은 친구에게 중고로 산 DSLR 카메라를 들고 무작정 찍기 시작했어요. 찍다 보니 점점 재밌고 좋아지더라고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고민하던 중, 유치원부터 함께 자란 친구 어머니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는 일을 겪었어요. 그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후 좋아하는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감사하게도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 너무 신이 나더라고요. 학교를 빼먹으면서 사진을 찍고, 밤을 새우며 보정 작업에 몰두했어요. 남해에서 하동까지 걸어가며 사진을 찍을 정도로요.(웃음)

카메라를 잡은지 1년쯤, 친구의 권유로 2015년 제3회 엄홍길 국토대장정에 지원했어요. 재밌어 보여서 신청했는데 높은 경쟁률에 서류에서 떨어졌어요. 대학생 자격요건에 전문 대학은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죠. 이대로 포기하기엔 아쉬워서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전부 모아 보냈어요. 이런 열정을 알아봐 주셔서 사진기록자로, 국토대장정에 합류할 수 있었어요.

15박 16일 동안 현장을 사진에 담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촬영하러 온 PD님이 좋게 보셔서 다큐제작사에 취업이 됐어요. 서울에서 4년 동안 다큐영상을 찍으면서, 사람을 대하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취미로 사진을 찍을 때와 달리 업으로 영상을 찍는 건 시간에 쫓기기도 하고, 영상은 사진보다 긴 호흡으로 느껴져서 힘들더라고요.(웃음) 다시 사진을 찍고 싶어, 남해로 돌아왔죠. ‘마파람’은 뱃사람이 사용하는 말로 남풍을 뜻하는 말이에요. 남해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처럼, 사진에 추억을 담아 보내드리고 싶어 마파람 사진관으로 이름 지었어요.


따뜻한 남풍이 부는 마파람 사진관 ©탐방



자연스러운 본연의 모습 그대로


남해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곳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사랑해요. 그런데 가끔 지나치게 보정된 사진 때문에 남해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곤 했어요. 요즘은 실제보다 과하게 표현한 사진들이 많아서 종종 이런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 사진만큼은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려고 해요. 보정도 본연의 매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하고요. 사진관 홈페이지에도 솔직하게 적어놨어요. “인테리어 전문가들처럼 넓게 보이게 이뻐 보이게 못 찍습니다.” 그 대신 자연스럽게,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죠. 인물, 풍경, 인테리어, 음식 사진까지 모두요. 매력을 가진 대상이라면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믿거든요.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드려요. “풍경 사진은 발로 찍고, 인물 사진은 입으로 찍는다.” 특히 인물 사진은 상대가 긴장하지 않도록 대화를 나누는 게 정말 중요해요. 어르신들 사진을 찍을 땐 카메라를 들기 전에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요. 대화의 시작은 보통 자녀분들 이야기예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환한 웃음을 지으시거든요. 그 순간이 제가 셔터를 누르는 타이밍이죠. 또, 작은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도 저만의 방법이에요. 큰 카메라는 부담을 줄 수 있거든요. 누구든 카메라 앞에 서면 긴장하기 마련이니까요. 저조차도 사진 찍는 건 아직 익숙해지기 어렵더라고요.(웃음)

사진관에서는 친구, 연인, 가족들의 소중한 순간을 담고 있어요. 밝게 웃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보는 사람에게도 행복을 전할 수 있거든요. 쉬는 날이면 남해의 풍경을 담으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곤 해요. 가끔은 훼손된 흑백 사진이나 할머니의 옛 사진을 가져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사진을 복원해 그분들의 추억을 되살리는 작업도 저에게 큰 보람이랍니다.


사진관에서는 사람들의 소중한 순간을 담고 있어요. ©탐방



남해에 사는 사람들을 찍고 있어요.


사진을 찍고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남해에는 어르신이 정말 많더라고요. 풍경만 찍기엔 뭔가 아쉬워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어깨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희귀병인 아놀드 키아리 증후군을 진단받았어요. 큰 수술이 필요했죠. 다행히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서,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사진으로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어요.

쉬는 날이면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가 사진을 찍으며, 장수사진을 촬영해 액자로 선물해 드린 게 <남해 사람들> 프로젝트의 시작이에요. 시골이다 보니 버스 운행도 적기도 하고, 몸이 불편해서 사진관 방문이 어려운 분들도 많아 직접 찾아가고 있어요. 그렇게 찍은 사진 속에는 담장, 골목길, 논과 밭 같은 익숙한 배경이 함께 담기죠. 아마 익숙한 공간 덕분에 어르신들도 더 편안하게 사진 촬영에 함께해주시는 것 같아요.

이제 몇 분 안 남은 참전용사분들의 모습도 기록하고 있어요. 서울에 있을 때부터 관련 사진이나 영상 일을 많이 다뤘던 탓에 늘 관심이 가더라고요. 최근에는 남해의 아이들을 위한 촬영도 고민 중이에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문제에 직면한 남해에서, 소중한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제 방식으로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요.


남해에 얼마 남지 않은 참전용사분들, <남해 사람들> 프로젝트 ©탐방


<남해 사람들> 프로젝트는 개인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기도 하지만, 필요할 땐 남해군이나 마을 요청에 따라 함께하기도 해요. 사회봉사 의미의 프로젝트라 액자 제작 비용 외에는 별도의 대가를 받지 않아요. 사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두고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그저 사진을 찍는 게 좋았고, 그렇게 찍은 사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죠. 가끔 “고맙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힘이 나요. ‘아, 이거 계속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있어요.

남해를 찾는 분들께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을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사진으로 기록해 보세요.” 유명 명소에서 멋진 구도의 사진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구석구석을 탐험하며 본인만의 시선을 담아보는 거예요. 길을 조금 돌아가 보기도 하고, 밭일하시는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어보고요. SNS에서 찾을 수 없는 마을의 진짜 이야기가 숨어 있을지도요? 그렇게 찍은 사진은 단순한 여행의 기록을 넘어, 마을과 연결된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거예요.


마을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사진으로 기록해보세요. ©탐방



얼마 전 대청소를 하다가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를 찾아냈어요. 작동도 안 될 줄 알았는데, 충전하니 화면이 켜졌죠. 친구들과 떠난 우정여행, 가족과의 소소한 순간이 담겨 있더라고요. 마치 과거로 떠난 기분이 들었어요. 배경은 늘 지나는 우리 동네인데도 새롭게 느껴졌죠.

탐방러님은 우리 동네의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으신가요? 마을 곳곳에는 아직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요. 마을 어르신들, 골목길 끝에서 만난 풍경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오늘부터 마을 탐방을 떠나보세요. 탐방러님이 찾은 마을이야기도 희수 님의 이야기처럼 누군가에게 닿아 울림을 줄지도요.💓


💡 <남해 사람들> 프로젝트가 궁금하다면 @namhaepeople에서 확인해 보세요. (계정을 클릭하면 프로젝트 계정으로 연결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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