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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실험하고 있어요.

도시를 떠나 시골마을로 삶의 공간을 옮길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일자리, 교통 다양할텐데요. 무엇보다 청년들에게 중요한 것은 친구라고 합니다. 함께 대화하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죠. 친구들과 함께 시골에서 살아가는 것. 꿈 같은 이야기라고요? 여기 도시를 벗어나 조용한 남해 시골마을로 온 친구들이 있습니다. ‘해변의 카카카’라는 유쾌한 이름과 달리, 소멸하는 방법을 탐구하며 천천히 자신들의 삶의 방향을 규정해 나가고 있는 이들을 만났습니다.

친구따라 ‘남해‘간다

진짜 말 그대로 특별한 계획 없이 친구 따라 왔죠. 2018년에 친구인 박향진 다큐멘터리 감독을 따라서요. 그 친구의 촬영*에 참여하면서 남해를 처음 방문하게 됐어요. 만약 혼자였으면 못 내려왔을 것 같아요. 처음에 내려올 때 친구 12명 정도가 모였거든요. 친구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자연스럽게 집을 구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친구들 중에서도 제가 가장 먼저 남해에 집을 구했어요. 개인적으로 이동에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성향이거든요. 제 삶의 궤적이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했고, 지역에서 사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죠. 사실, 귀촌이 방법적으로는 쉽거든요. 그냥 서울에서 다른 동네로 이사 가듯, 남해에서 집 구하고 짐 옮기면 되는 것이죠. 그 마음먹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저는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편하게 왔던 것 같아요.* 박향진 감독의 <도망치는 것은 비겁하지만 도움이 된다>(2018년)는 ‘남해에서 뭔가 해볼 순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되어 남해로 귀촌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지금도 남해에서 계속 이동하고 있어요. 처음에는 월세로 지냈어요. 어촌 마을에서 지냈었거든요.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집에서 지냈고, 방 3개에 창고가 딸려 있는 집이었어요. 2년 이후 이사를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지금은 산촌 마을에 살고 있어요. 지금은 전세로 지내고 있고, 방 3개에 마당과 창고가 하나 있는 약 150평 정도 되는 부지예요.무지개마을에서의 해변의 카카카

남해에서 살아가기

이동하는 데에 두려움이 없는 그들은 남해에 정착했지만 한곳에 머물러 있는 삶을 택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카카카는 남해에서 여행이 아닌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데는 일, 경제활동이 필수적이죠. 4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카카카는 지금도 살아가기 위한 고민을 치열하게 하고 있습니다.2018년 3월에 처음 이주를 하고, 3월부터 8월 여름까지. 한 반년간 ‘매우 즐겁게 오랫동안’ 놀았어요. 친구들도 놀러 오고, 같이 밥해 먹고, 술 마시고, 해수욕하는, 그런 시기를 한 반 년 정도 지낸 거죠. 그러다 돈이 떨어지니까 저를 비롯한 많은 친구들이 경제적인 고민을 하고, ‘일을 해야겠다’해서 ‘카카카’라는 카레집을 차렸어요. 근데 한 달 반 정도 하다가 식당을 결국 접었죠. (웃음)저희가 문화기획, 디자인 등 창작 활동하는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었거든요. 그러다 서울 창조경제 혁신센터에서 주관했던 <로컬 라이프 랩>이라는 문화 지원 사업을 처음 접했죠. 그렇게 남해를 기반으로 출판이나 문화 기획을 하는 ‘해변의 카카카’가 시작되었어요.그 이후로도 주로 정부 지원사업을 많이 받아왔어요. 그러나 올해부터는 좀 줄여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4년 동안 지원받으면서 했던 일들이 저희 스스로 만들어내는 힘의 밑거름이 됐다고 느껴요. 이제 ‘이걸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가야 하지 않을까.’라며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카카카’라는 기업의 지속력과 자생력이 생기도록요.요즘은 카카카의 재정비, 발돋움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건물 매입을 위한 펀딩을 준비 중이라 매주 서울이랑 남해로 왔다 갔다 해요. 내부 회의를 하면서 5년 정도는 남해에 더 머물겠다는 결론이 나왔고, 그렇다면 저희만의 물리적 공간이 하나 필요하겠다 싶었죠. 하지만 아시다시피 남해는 경남·전남권에서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예요. 땅값이 계속 오르고 있죠. 저희는 굉장히 가난하거든요. 내부 예산으로는 불가능하다 보니까 ‘여기저기 사람들한테 모아보자. 빌려보자.’하면서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요. 건물을 매입한다면 앞으로의 5년 정도의 계획을 세우고, 어떤 수익 활동을 할지 그리고 어떻게 돈을 갚아나갈지에 대해 설계하고 있어요.내부적으로는 업무 스타일과 방향, 사업 수익 모델같은 방법들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설계하는 중이에요. 약 4년 동안 일을 했지만 체계가 있진 않아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왔다면 이제는 이 일들을 정리하면서 카카카의 방향성을 잡아나가고 있죠.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은 카레집이 망하고 난 뒤, 처음 따 낸 지원사업의 결과집입니다. 직설적인 제목의 잡지는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수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관찰자적 시각으로 덤덤히 써내려간 소멸의 현장은 여러 물음과 걱정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소멸이 사라지고 잃어버린 것을 넘어 변화라고 말합니다. 생활을 통해서 겪는 변화들. 그것은 손에 잡히는 물건일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일 수도 있죠.지역에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을 찾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단순히 ‘이런 책 만들면 재미있겠네.’ 정도였어요. 처음 해보는 프로젝트고 작업이다 보니까 어려움이 있어도 즐겁기만 했죠.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은 각 호마다 주제가 있죠. 1호는 빈집, 2호는 전동 휠체어였어요. 모두 저희가 남해에서 관찰한 장면? 사물이죠.우선, 여기서 살기 위해서는 집을 구해야만 하죠. 지역에는 빈 집이 엄청 많거든요. 그러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고 있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집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당시 저희가 살았던 어촌마을에 한 이발소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저희가 거기를 엄청 좋아했어요. 예뻐서 자주 갔고, 가면 언제나 그대로 있었죠. 빈 집을 계속 확인하게 되는 시간들이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주제로 정했어요.2호인 전동 휠체어는 문화 행사 관련해서 아이디어 회의를 하다가 얘기가 나왔어요. 남해는 물론이고 지역에는 전동 휠체어가 정말 많이 보여요. ‘전동 휠체어 달리기 대회를 하면 어르신들도 참여할 수 있고 재밌겠다.’라는 흘러가는 얘기가 나왔죠. 이때 제가 ‘2호 주제로 전동 휠체어를 하면 좋겠다’싶어서 선택하게 됐어요.해변의 카카카가 매료되어 자주 가던 이발소의 모습아직 발행되지 않은 3호는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인류세*를 주제로 하고 있어요. 인류세 관점에서 ‘인류세 대멸종’이라는 키워드가 나와요. 지금도 인류의 환경 파괴로 굉장히 많은 생물종이 멸종해 가고 있다는 거죠.지방 도시 소멸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엄청 인간 중심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지방 도시 소멸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사람들이 사라지면 지역에서 생물종들은 오히려 보호되는 거 아닐까? 멸종되지 않고 자연 상태를 유지하게 되는 거 아닐까?’라는 뭔가 상상까지도 가게 됐죠. 이런 맥락에서 **‘멸종과 소멸이라는 키워드를 좀 부딪히게 해보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3호의 주제로 선택하게 됐어요.인류세 멸종이라는 키워드에 흥미가 생겨서 작업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저도 계속 책에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하면서 작업 중이에요. 저의 고집으로 인류세로 정한 것도 있거든요. 5월 중에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잘 담아봐야죠.* 인류세 : 크뤼천(PaulCrutzen)이 2000년에 처음 제안한 용어이다. 지질시대를 연대로 구분할 때 기(紀)를 더 세분한 단위인 세(世)를 현대에 적용한 것으로, 지질시대 최후의 시대이자 현세인 충적세(沖積世)에 이은 전혀 새로운 시대이다. 인류세는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현재 인류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다.

변화하는 남해, 남해로 오세요.

살면서 남해의 변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긴 해요. 젊은 사람들의 정착이 생겨나고 있죠. 저희 말고도 지역 자립 프로그램 같은 것을 했던 팀도 있어요. 거기 참여했던 분들이 귀촌을 직접 실행하시기도 하고요. 근데 ‘드라마틱 하게 사람들이 유입됐다.’보단 ‘조금씩 재밌는 분들이 들어오네.’ 정도인 것 같아요.재밌는 분들이 많이 생긴다는 건 저희에게 즐거운 일이거든요. 새로운 가게가 생겼다고 하면 엄청 가보고 싶고 그런 것처럼요. 누구는 이곳이 죽은 도시, 죽어가는 도시라고 하지만 이 속에서 무언가가 사라지고 생기고 하는 것들이, 변화라고 하기보다는 그저 일상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희가 이번에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면서 읍내를 지났는데 왕만두 가게가 생겼더라고요! 왕만두 가게가 없었거든요. 여기는 김이 폴폴 나는 만둣집이 한곳도 없어요. 제가 매일 ‘만두 먹고 싶다. 왕만두 먹고 싶다.’ 노래를 불렀는데 정말 생겼어요. 정말 반가워서 보자마자 만두를 구매했죠. 사실 방금도 하나 먹었어요.(웃음)왕만두 가게 말고도 저희가 살고 있는 마을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아까 산촌마을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무지개마을이라고 불려요. 산지라 해도 12월까지도 따뜻함이 있죠. 가구 수도 굉장히 적고, 관광지도 아니기 때문에 아주 조용해요. 산책하기도 좋고, 마을 근처 산 중턱에 저수지가 넓게 있는데 거기도 뷰가 엄청 예쁘거든요. 바닷가도 보이고, 그런 편안함이 좀 있는 마을이죠. 남해는 조용하고 따뜻한 게 매력이에요.귀촌을 꿈꾸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써 말씀드리자면, 내려오기 전에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델, 사람들과 비슷할까’를 생각하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말로 하면 정보 습득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왜냐하면 너무 막막할 수 있어요. 저희도 선 모델을 계속 생각하면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지역의 정보가 너무 없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내려와서 정착했는지 참고하시는 게 더 현실성 있는 계획을 세우실 수 있을 거예요.지역에 내려가서 사는 모델이 엄청 다양해요. 저희처럼 친구들끼리 내려온다거나 가족, 신혼부부, 혼자서 내려오는 경우 등이 있죠. 저희는 단순히 즐거워서 마음 맞는 친구들과 내려온 모델이잖아요. 쉽지 않죠. 이렇게 도시에서 마음 맞는 사람이 만나서 함께 이주한다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던 것 같아요. <무럭무럭> 프로그램*을 기획한 이유이기도 해요. 저에게는 좋은 경험과 기회였고, 앞으로도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고 싶어요.* 해변의 카카카가 2020년에 기획한 창작자의 지역살이 프로그램이다. 창작 활동을 하거나 문화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1기는 6주살이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2기는 일주일 살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였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남해에 정착하고 카카카의 멤버가 된 경우도 있다.해변의 카카카에게 재미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없습니다. 그들에게 지역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음 맞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활동들을 했던 곳이 남해였던 것뿐이죠. 어쩌면 지방 소멸의 해결책은 카카카의 활동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귀촌이라는 개념을 너무 좁게 바라봤던 것은 아닐까요. 이들의 말처럼 지역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 다양한데 말이죠.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셨다면, 먼저 다양한 삶을 읽어보세요.오늘 로컬에서의 삶, 해변의 카카카와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나눠주세요.> 해변의 카카카의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마을 놀이터를 만들고 있어요.

운동 좋아하세요? 요즘 운동 후에 인증사진을 찍고,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해시태그를 다는 것이 인기라고 해요. 운동크루나 체육관 친구도 많아졌고요. 헬스장이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저에겐 #오운완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동네에 좀 더 재밌는 체육관은 없는 걸까요? 놀다 보면 땀이 뻘뻘 나고 건강해지는 놀이터처럼요.한옥마을로 알려진 북촌에 제가 찾던 곳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 달려갔어요. 탁구장으로 내려가는 계단부터 벽화가 화려합니다. 탁구를 하는 동물들, 악기를 연주하는 동물들, 뛰어노는 동물들. “탁구장이 맞겠지?”라는 의심이 드는 순간, 칠판에 “탁구장 맞아요"라는 글귀와 핑-퐁- 핑-퐁- 탁구 하는 소리가 저를 안심시킵니다. 아담한 지하 탁구장에서는 한창 레슨이 진행 중이네요. 주변을 둘러보니 탁구라켓 옆에 기타와 우쿨렐레, 뒤에는 커다란 가수 김광석의 사진, 벽에는 다양한 포스터와 그림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신기한 탁구장을 운영하는 박현정님이에요.신기한 탁구장, 북촌탁구 Ⓒ탐방

탁구장 맞아요.

북촌탁구가 이름만 탁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탁구장 맞아요.(웃음) 문화 공간을 겸하는 탁구장이죠. 처음 시작할 때부터 문화 공간을 염두에 두었어요. 탁구대는 접었다 폈다 하는 활용성이 있으니까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사실 전문 탁구장은 탁구대를 절대로 안 접어요. 접을 일도 없고 공이 들어가지 말라고 스커트로 아예 막죠. 근데 생각해보면 그때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월례대회라든가 시합을 하고 난 뒤, 탁구대를 식탁으로 만들어 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었거든요. 탁구대는 여러 가지 용도가 있는, 유연한 물건인 거죠.처음에는 공연 공간으로만 생각했어요. 문을 연 2018년 1월부터 공연을 시작했으니까요. 제가 음악을 원체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탁구장을 운영해 보니 북촌에 아이들이 꽤 많더라고요. 탁구장에 아이가 오면 보통 엄마가 함께 와요. 그렇게 엄마들과 친해졌죠. 그 엄마들이 아이들에게는 지출하지만, 본인에게는 지출하지 않아요. 문득 엄마들을 운동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는데 마침 친한 동생이 매트 필라테스 자격증을 취득한 거예요. 이 친구도 그룹 레슨을 하고 싶어 하고. ‘그래, 잘 됐다!’ 하며 북촌탁구의 아침 필라테스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죠. 그렇게 북촌탁구에는 점점 다양한 활동이 생겨났어요. 동네 산책이라는 노래도 만들고, 마을 사람들과 뮤직비디오도 만들었죠. 기타 선생님과 오카리나 선생님도 계세요. 탁구대에 테이블보를 깔고 수업을 하죠. 저는 북촌을 누구나 1인 1악기를 할 수 있는 마을로 만들고 싶어서 ‘북촌클라스’라는 문화예술단체를 만들기도 했어요. 조금은 특이한 탁구장인가요? 그래도 북촌탁구는 탁구장이 맞아요. (웃음)그래도 북촌탁구는 탁구장이 맞아요. Ⓒ탐방사실, 이전에도 탁구장을 운영했었어요. 100평 면적에 회원도 한 80명, 코치도 3명이 있는 꽤 규모 있는 탁구장이었죠. 그런데 엄마가 항암 투병을 하시게 되었고, 그다음엔 제가 아팠죠. 연달아 안 좋은 일이 겹치다 보니 상실감, 박탈감이 가득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탁구장을 닫게 되었죠. 그러던 중 서울시 50+ 재단의 홍보물을 보게 되었어요. 한 글귀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죠. ‘조금은 다른 삶에 용기를 더하는’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쫙- 있었던 거죠. 바로, 전화해서 운 좋게 들어갔어요. 당시에 저는 50대가 아닌 40대였거든요.(웃음) 그렇게 인생학교 1기생이 되었답니다. 인생학교에서 많은 배움이 있었고, 다양한 생각을 해보았던 것 같아요. 다시 일을 시작해야겠지만, 그냥 탁구장을 하고 싶지는 않았죠. 탁구도, 회원들도 좋았지만, 제 안에 있는 문화 예술적인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았거든요.

확실히 살고 있으니 ‘북촌 사람'이 되더라고요.

북촌은 저에게 꽤 익숙한 동네예요. 김광석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둥근소리’ 덕분이죠. 모임 분들이 여기에 많이 살고 있다 보니 북촌에 자주 오게 됐죠. 둥근소리 모임은 보통 밀과보리라는 식당을 통째로 빌려서 진행했어요. 그곳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다 보니 식당 주인과 친해졌죠. 동갑이고, 김광석을 너무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있었거든요. 북촌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고, 식당을 하는 친구가 있다 보니 굶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북촌에 오게 되었달까요? 실제로 제가 여기로 이사 올 때 그 친구가 산해진미 한 상을 딱- 차려주기도 했어요(웃음).북촌탁구의 문을 열고 한 2~3년 뒤에 북촌으로 집을 옮겼어요. 생각보다 꽤 늦었죠? 아침에는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갈 때는 친구들이랑 술 한잔을 걸쳤으니 택시를 타고 갔죠. 교통비를 무시할 수 없더라고요. 무엇보다 필라테스 레슨은 아침 일찍 하니 출근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웃음) 그렇게 북촌으로 이사를 했어요.확실히 살고 있으니 ‘북촌 사람'이 되더라고요. 출퇴근할 때는 아는 사람만 알았어요. 마을을 자주 돌아다니지도 않았고요. 이곳에서 살게 되니 보이는 것들과 만나는 사람들의 폭이 더 넓어지더라고요. 어르신들은 애들을 가끔 데려다주러 오시거나 이런 것 말고는 지하 세계로 내려오지 않으시죠. 그런데 여기에 살면서 길에서 만나게 되고 먼저 말도 걸어주시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처음 제게 건넨 말씀이 “우리 집에 방 나왔는데 누구 들어올 사람 있는지 알아봐 줘.”였고요(웃음). 제가 동네의 이 사람, 저 사람 모두와 친하니까 말씀하신 거죠. 그때부터 ‘북촌 홍반장’이 되었답니다. 이제는 시계 건전지를 갈아드리고, 책상도 옮겨드리죠. 어르신들에게 뭘 해드리고 싶어도 마땅한 경로가 없었는데, 살게 되니 그런 걸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럴 때, 마을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그전에도 여기에 오면 북촌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것 같아요.그때부터 ‘북촌 홍반장’이 되었답니다. Ⓒ탐방어느 날 어르신이 시계 건전지를 바꿔 달라고 하셔서 갔어요. 혼자 살고 계시다 보니 외로우셨는지 종이 앨범을 꺼내서 보여주시더라고요. 한 권을 보고 이제 일어나야겠다 싶었는데, 한 권을 또 가져오시더라고요(웃음). 정말 일을 하러 가야 해서 마지막 한 권은 못 보고 일어났어요.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예술인 팀 예벤저스(예술인 어벤져스, 현정님이 붙인 이름이다)를 만났을 때 어르신들을 위한 무언가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그걸 계기로 <어르신 사진 교환전>을 열었어요.어르신이 사진을 가지고 오시면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동안 장갑을 낀 전문가가 사진을 소중하게 다루면서 디지털 사진으로 변환해서 핸드폰에 담아드리는 행사였죠. 어르신은 사진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해주시고요. 맞아요(웃음). 명품이나 보석 다룰 때처럼 어르신의 사진을 조심히 만졌죠. 그 역할을 했던 예술가가 연극을 하시는 분인데 정말 최고였어요. 어르신과 저, 그리고 더 어린 세대들까지 서로 더 가까워지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참여하신 예술가들도 너무 좋아하셨고요.어르신 사진 교환전 Ⓒ탐방북촌탁구라는 공간이 참 고마워요.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북촌이라는 마을에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니까요. 예를 들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출연하는 ‘아무연주대잔치’가 그렇죠. 출연진만 해도 족히 30명이 되는 대형 공연이에요.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세대가 함께 만들죠. 탁구장인지, 공연장인지, 연습실인지 명확하지 않은 이런 공간이니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전 북촌탁구를 더 유연하고 다양하게 사용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마을, 북촌을 더 발견하고 알릴 거예요. 지금도 예벤져스와 재미난 일을 준비하고 있죠. 한 10월쯤, 계동길을 놀이동산으로 만들려고 해요. 탐방도 와서, 계동 빅3 이용권 꼭 이용해 보세요(웃음)우리 마을, 북촌을 더 발견하고 알릴 거예요. Ⓒ탐방인터뷰를 마치고 현정님이 평소 좋아하는 장소인 북촌서재에 함께 갔어요. 도보로 3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거리였는데, 그 사이에 현정님과 인사를 나누는 동네 사람들이 참 많았어요. 동네 사람이니 당연한 일이면서도 참 신기하고 어색했답니다. 동네를 30분 이상 산책을 할 때 아는 사람 한 명을 만나기도 어려울 것 같거든요. 어쩌면 우리는 당연한 게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일상을 사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북촌의 홍반장, 현정님이 되진 못하더라도 오늘은, 마주친 이웃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보려고요.로컬의 삶, 현정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나누어주세요.> 매주, 탐방 인터뷰와 함께 하고 싶다면?탐방의 모든 콘텐츠 저작권은 제공자와 탐방에 있습니다.

책을 통한 연결을 만들고 있어요.

한 달 살기, 워케이션이 활성화되면서 지방, 시골에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유튜브만 보더라도 시골에서 살아가는 일상이 참 편안해 보이고 꽤 힙해 보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막상, ‘여행 말고 시골로 이사를 할래?’라는 질문에 시원하게 답은 못 하겠어요. 여행이 아닌 거주는 다르니까요.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 홍지영님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사실, 지영님은 로컬지향자 생강님의 친구인데요. 생강님은 평소 꿈이 귀촌이라고 말하던 지영님이 졸업 후 바로 지방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해요. 생강님에게 좋은 자극을 준 지영님을 안성의 한 책방에서 만났어요.

그래, 뭐라도 해보자. 실패해도 좋다.

저한테는 지방에 가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서울에서만 살았다면 살 수 있는 터전이 딱 서울로 제한될 수 있는데, 저는 안성에서 태어나서 살았거든요. 서울 근처이긴 해도 서울은 아니니까,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또 저는 서울에서 사는 게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싶은데, 그때는 서울의 삶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시골이 훨씬 아름답잖아요.(웃음)대학생 때부터 막연히 귀촌, 귀농이 꿈이었어요. 결국 성공하진 못했지만요. 생강이 말한 것처럼, 대학 졸업 후에 지방으로 내려가긴 했죠. 하지만 완전히 시골까지는 가지 못했어요. 사실 지방에 가면 길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저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죠. 지금은 SNS가 활발하고 시골의 커뮤니티도 활발한 것 같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거든요. 저 혼자 시골에 내려가는 것은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그러다 보니 나 자신, 내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 한 해 한 해, 나이만 들어가고. 문득, ‘이거 해봤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너무 부끄럽고 속상했어요. ‘이러다 나중에 더 나이 들어서 또 후회하지 말자. 그래, 뭐라도 해보자. 실패해도 좋다. 아니, 차라리 실패해서 누군가한테 실패했어.’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하고 차를 좋아하니, 책방을 열었던 거예요. 그게 바로, 다즐링북스죠.차라리 실패해서 누군가한테 실패했어.’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탐방그게 바로, 다즐링북스죠. Ⓒ탐방다즐링북스는 2018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아무리 실패해도 좋다 하더라도, 코로나19는 작은 동네 서점에게 큰 어려움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지영님은 의외로 본인이 견디는 힘, 버티는 힘이 좋다면서 활짝 웃네요.

손님들이 제안한 모임들이 재밌어요. 제 시각을 벗어나거든요.

손님이 없었던 기간도 되게 길었고 지금도 손님이 많지는 않지만(웃음), 책방은 정말 제 성향과 맞는 일이에요. 앉아서 책을 보다가 사람들이 오면 조금씩 이야기하고. 그냥 이런 삶이 정말 만족스러웠어요. 그리고 오픈하고 얼마 안 되어서 바로 독서 모임을 시작했거든요. 책방을 열었던 것처럼, 일단 시도는 해보자는 것이었지만 누가 올까 싶었죠. 전혀 유명하지도, 주목받지도 못했었거든요. 근데 또 어떻게 오는 분들이 있더라고요.블로그와 인스타그램으로 홍보를 했어요. 블로그 이웃도, 인스타 팔로우도 없었거든요.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죠. 알고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한 번씩 검색하더라고요. 안성 독서 모임, 안성의 서점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다즐링북스를 알게 된 분들이 한 명씩, 두 명씩 오게 되고. 그분들이 본인의 블로그나 SNS에 글을 써주고.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정말 느리게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처음에는 독서 모임도 제가 기획부터 진행까지 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면서 모임 수가 많아졌거든요. 지금은 한 달에 10개 정도의 모임이 운영되고 있어요. 독서 모임의 참여자 중에서 ‘이런 독서 모임 해보고 싶어요.’ 하는 분이 있었어요. 꽤 오랜 시간 독서 모임을 해 온 분이니 서로 잘 알잖아요. 그렇게 같이 기획하고, 그분이 진행까지 맡았죠. 그렇게 점점 모임이 많아지니, 제가 자주 오신 손님들께 모임장을 부탁하기도 했죠.(웃음)독서 모임의 주제는 정말 다양해요. 세계 문학을 함께 읽는 모임이 꽤 오래된 것 같고, <편견을 깨는 책 읽기>라고 해서 사회문제와 관련된 책을 읽는 모임도 있고, 시를 읽고 나누는 모임도 있어요. 아침에 문화 예술 책을 읽는 <아침 독서 클럽>도 있었네요. 손님들이 제안한 모임들이 재밌어요. 제 시각을 벗어나거든요. 한 번은 손님이 하루키 초기작을 읽고 싶다고 모임을 제안하셨어요. 사실 저는 하루키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런 생각조차 못 했거든요. 그런데,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초기작을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게 재밌더라고요.(웃음) 또 비슷한 게 요즘하고 있는 <초보 철학 클럽>이에요. 철학을 좋아하고 계속 공부하고 계신 분이 제안하신 거죠. 이전에도 같은 모임장님이 철학 모임을 계속 진행하셨어요. 철학을 전혀 모르는데, 옆에서 계속 듣다 보니 이제는 무슨 말인지 조금씩 알게 되는 게 있더라고요. 주워들은 거죠.(웃음)이렇게 사람들이 다양한 관심을 갖고 여기에 모이는 걸 보는 게 재밌어요. 독서 모임이라고 하면 약간 틀에 박힌 책만 읽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혼자 읽는 게 아니라 ‘나와 비슷한 취향이 또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독서 모임을 만들어보려고 하잖아요. 그게 좋더라고요.독서 모임의 주제는 정말 다양해요. Ⓒ탐방사람들이 다양한 관심을 갖고 여기에 모이는 걸 보는 게 재밌어요. Ⓒ탐방

책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연결들이 더 소중하고 귀해요.

대학교 옆이지만 대학생은 거의 없어요.(웃음) 안성, 평택에 사는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분들이 오시죠.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독서 모임을 하다 보면 친해지죠. 항상 사적인 질문은 삼가달라고 말씀드리거든요. 직업, 나이와 같은 배경을 모르고 만나는 거죠. 그런데도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하면 확실히 친해져요. 또, 다즐링북스에 책을 사거나 음료를 마시러 왔는데 같은 독서 모임 사람이 있으면 엄청나게 반가워하시고요. 우연히 만나면 더 반갑고 좋은 거죠.서점이지만, 본인의 책을 가져와서 읽을 수 있어요. 책을 거의 안 읽지만, 매일같이 오시는 분도 있죠. 이분들을 위해서 음료도 파는 거죠. 다즐링북스가 제3의 장소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한 달에 한두 권 정도를 사잖아요. 그럼 서점에 한 달에 한두 번밖에 올 이유가 없는 거죠. 그런 공간이 되는 건 싫었어요. 자주 드나들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장소가 되고 싶어요. 책은 일종의 도구예요. 공부하는 도구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 대화하는 도구, 좀 더 나아지고 달라지는 데 정말 좋은 도구죠. 저는 책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연결들이 더 소중하고 귀해요. 독서 모임이지만 코로나 이전에는 함께 소풍도 가고 연말 파티도 하고. 정말 재밌었거든요.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또 책을 정말 많이 읽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과 대화하다 보면 그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읽어보고 싶고. ‘함께 해서 즐거웠던 경험’을 만드는 공간인 거죠. 이런 동네 책방이 더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그럼, 갈수록 흩어지기만 하는 사람들이 다시 연결되고 모이고 서로를 돌보고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웃음)‘함께 해서 즐거웠던 경험’을 만드는 공간, 다즐링북스 Ⓒ탐방아직도 정말 아름다운, 자연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은 ‘여기도 뭐 여기도 시골인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웃음) 산이랑 강이랑 가깝게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만약에 가더라도 다즐링북스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런 커뮤니티 만드는 게 너무 재밌고 좋아서요. 저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사람들 앞에 서면 엄청나게 떨려서 말도 못 하는, 딱 그런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일단 제가 편안해서 그런지 괜찮아요. 제 공간을 열어 놓고 오시는 분들과 만나고 소통하고 연결되니까 참 좋아요. 다즐링북스를 안 했다면 참 외로웠을 것 같아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평생 지금이 친구가 제일 많아.’라고 말한다니까요.평생 가장 친구가 많은 나날을 보내고 있는 지영님 Ⓒ탐방책방지기가 책은 일종의 도구일 뿐이라고 말하는 책방. 다즐링북스는 꽤 독특한 책방입니다. 지영님이 바라고 만들고 있는 로컬, 동네를 만날 수 있는 곳이죠.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닌 함께 해서 즐거웠던 경험을 만드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지영님은 지금도 다양한 모임과 만남을 기획하고 있죠. 지영님을 만나고 책 외에도, 함께 소통하고 행복한 기억을 만드는 다양한 도구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다른 다즐링북스를 찾아봐야겠어요.로컬에서의 삶, 지영님과의 대화에서 궁금하거나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댓글과 리뷰로 나누어주세요.탐방의 모든 콘텐츠 저작권은 제공자와 탐방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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